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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빈집’에 울려 퍼지는 지방도시의 신음

관리자 | 2019.11.11 11:38 | 조회 619
날로 심각해져가는 지방도시의 빈집에는 인구구성, 일자리와 복지, 고령화 문제 등이 담겨 있다. 성장과 개발을 외치며 발전해온 한국 도시정책에 빈집은 전에 없던 질문을 던진다.

사람을 잃고 빈집에 갇혔네

2019년 한국은 양극단에서 부동산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 “집이 없다” 그리고 “사람이 없다”. 사람이 넘치는 곳은 집이 부족하고, 사람이 부족한 곳은 빈집이 방치된다. <시사IN>은 지난 5월부터 4개월간 전국의 빈집을 찾아다녔다. 한국보다 앞서 빈집 문제를 겪은 일본·미국·독일 사례도 취재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쉬이 들여다볼 수 없는 풍경이 목격됐다. 도시가 죽어가고 있다. 전 국토의 88%를 차지하는 지방에서 발생하고 있는 빈집은 ‘지방의 위기’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빈집은 지금 이 순간 도시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이며,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위협의 경고다. 우리는 이 불균형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들판에 레일이 깔리자 사람이 모였다. 호남선과 전라선이 갈라지는 구간에서 도시가 태어났다. 전라북도 익산시는 한때 광주와 전주에 이어 ‘호남 제3의 도시’로 불린 호남의 입구다. 역을 중심으로 도시가 성장했다. 1977년 이리역 다이너마이트 폭발 참사로 9900여 명이 집을 잃기도 했지만 익산 시민들은 정성껏 도시를 복구했다(1995년 익산군과 이리시가 통합해 익산시가 되었다). 익산시 중앙동은 그런 익산 시민들의 땀과 눈물이 묻어 있는 곳이다. 지방도시 어디에나 하나쯤은 있을 법한 ‘젊음의 거리’도 이곳에 들어섰다. 프랜차이즈 매장은 이곳에 제일 먼저 똬리를 틀었고, 유명 브랜드 옷가게도 점포를 채웠다.

중앙동 번화가가 ‘과거형’이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시 동쪽 허허벌판이던 영등동과 어양동에 차례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중앙동 일대는 구도심이 되었다. 신도시에 들어선 아파트는 인구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2010년대에는 서쪽 모현동도 재개발되면서 중앙동 거주 인구는 점차 줄어들었다.

9월28일 방문한 익산시 구도심(중앙동)은 동네 전체가 컴컴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예식장, 호텔, 사우나 따위가 거대한 박물관처럼 과거를 박제하고 있었다. 젊음의 거리를 메운 점포도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비어 있었다. 젊음의 거리를 마주한 익산문화예술의거리에는 그나마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280m 남짓한 길이의 일방통행 골목에서 시민들은 작은 축제를 열곤 하지만, 이 인위적인 정비 구역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부서진 유리창과 버려진 침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2019년 대한민국은 ‘집이 없다’와 ‘사람이 없다’가 공존한다.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실거주자를 위한 주택이 부족하지만, 지방도시에서는 사람이 사라진 빈집이 점점 늘고 있다. 원도심의 빈집은 익산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사IN>이 2017년 통계청 조사를 분석한 결과, 전국 빈집은 119만9306가구 수준이다. 전체 가구수 대비 빈집 비율인 공가율은 7.18%. 언뜻 보면 그리 높은 비율이 아닌 것 같지만, 주택시장에서 적정 공가율이라 여기는 3~5%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문제는 이 수치가 그저 평균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빈집은 생기는 곳에서 또 생긴다. 주로 지방도시에서 빈발한다.

지방 중소도시에서는 ‘서울의 눈’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전국 평균 공가율은 7.18%이지만 읍면동마다 차이를 보인다. ‘도시 동네’라고 할 수 있는 동(洞) 평균 공가율은 5.68%이지만, 시골 중심지인 읍(邑) 평균 공가율은 10.49%이고, ‘시골 동네’인 면(面) 평균 공가율은 14.12%로 치솟는다. 읍면동 차이만 따지면 “시골이 문제일 뿐, 도시는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는 평균의 함정이다.

대표적으로 2017년 전라남도 나주시 공가율은 20%에 육박한다. 빈집 문제가 심각하다고 알려진 일본의 평균 공가율 13.5%(2018년)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나주 영산포 지역(이창동·영산동)에서도 빈집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창동의 공가율은 26.48%, 영산동의 공가율은 19.48%이다.

빈집을 확인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대문 바깥에 묵직한 자물쇠가 걸려 있거나 마당에 잡풀이 무성할 경우 대부분 버려진 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부 빈집은 몇 달치 고지서가 우편함에 그대로 꽂혀 있기도 했다. 대문 앞에 널브러진 전기세·수도세 고지서를 살펴보니 사용량이 거의 없었다. 녹슨 대문 너머로 이웃에서 내다버린 쓰레기가 나뒹굴기도 한다.

전국 단위 빈집 현황에 대한 체계적인 데이터는 찾기 어렵다. 과거에는 집이 남아도는 문제가 도시정책과 지방행정에 큰 이슈는 아니었다. 5년에 한 차례씩 진행한 인구주택총조사 데이터가 전국 단위 빈집을 ‘동일한 기준’으로 측정해왔지만, 이마저도 조사 방식이 2015년부터 등록 센서스(직접 방문하지 않고 주민등록부·건축물대장 등 행정자료를 활용하는 방식)로 바뀌면서 통시적 비교가 어렵게 되었다.

그나마 최근 추세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등록 센서스인 2015년과 2017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다. <시사IN>은 데이터 전문가와 함께 2017년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국 빈집 현황을 분석해보았다. 분석 기준은 ‘준공 후 1년 이상 비어 있는 주택’으로 삼았다. 이번 분석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포함된 반면, 오피스텔은 제외되었다.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이하 빈집 특례법)’상 미분양 아파트는 ‘빈집 집계’에 포함되지 않지만 이번 분석에서는 미분양 아파트도 빈집의 주요 원인이자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오피스텔은 통계청 원본 데이터에 빠져 있다. 오피스텔은 주택법상 주택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아파트의 대체 수단으로 여겨지는 오피스텔 빈집까지 포함하면 지방도시 빈집 비율은 이번 분석 결과보다 더 많으리라 추정된다.

광양, 김제, 영천, 상주 등 비율 높아

비수도권 지방도시의 빈집 비율은 전국 동 평균을 상회한다. <그림 1>은 전국 시군구별 빈집 데이터를 시각화한 자료다. 색이 진할수록 빈집 비율이 높은 도시다. 강원 평창군(23.07%), 경북 청도군(20.51%), 강원 양양군(20.03%) 등 ‘군’ 단위 소도시뿐 아니라, 전남 광양시(16.05%), 전북 김제시(14.72%), 경북 영천시(14.69%), 경북 상주시(13.16%) 등 지역 거점도시들도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다. 특히 전국 지도를 한눈에 보았을 때, 빈집 위험 지역은 국토의 88%를 차지하는 비수도권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

빈집은 왜 생기는 걸까? 사람들은 왜 집을 버리고 방치할까? 지방도시에서 발생하는 빈집은 수요와 공급 원리에 따라 발생한다. 공급과잉이 첫 번째 이유다. 지방도시에 대규모 아파트가 공급되지만 이내 미분양이 발생한다. 미분양 아파트는 적정 가격에 집을 구입하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 생긴다. 미분양 주택은 가격 조정을 거쳐 결국 언젠가는 해결된다. 도시 내 풍선효과다. 장기적으로 보면 주민들은 천천히, 좀 더 나은 주거환경을 찾아 단계적으로 옮겨간다. 결국 남는 것은 오래된 주거환경이다. 대개 지방도시에서는 구도심 지역이 ‘최후의 빈집’으로 남게 된다.

지방에서도 인구가 많고 중요 거점지역으로 꼽혔던 네 군데(익산·나주·김천·거제)의 빈집 비율을 행정동별로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았다(<그림 2-1> 참조). 앞서 설명한 전북 익산시는 구도심인 중앙동(23.93%)과 평화동(26.41%)의 공가율이 높게 나타난다. 빈집 밀집지역을 다른 지역이 감싸는 형태다(2019년 현재 평화동은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대규모 철거가 진행됐다). 전남 나주시 역시 나주역 인근 구도심인 송월동(21.85%)에서 빈집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짓다 만 흉물 아파트’도 공급과잉이 빚어낸 풍경이다.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는 290여 세대 규모 군서월곡아파트가 14년째 방치되어 있다. 2000년 착공을 시작한 이 아파트는 2005년 11월 당시 사업자가 콘크리트 골조만 세운 채 사업을 중단했다. 이후 국립공원 월출산의 경관을 망치는 흉물로 꼽혔다. 애초 시장성이 없는 사업이었다. 사업이 중단된 2005년 군서면 인구는 4098명에 불과했다. 290여 가구가 들어설 만큼 수요층이 넉넉하지 않았다. 2019년 9월 기준 군서면 인구는 3253명에 불과하다.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예산군 신례원 창소리에도 비슷한 ‘공사 중단 장기 방치 건축물’이 있다. 방치된 흉물 아파트는 빈집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서울에서 서류로는 확인할 수 없는 지방도시의 실상이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만큼 지자체가 임의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주택 공급과 도시 확장도 빈집을 유발하지만 더 핵심적 원인은 수요, 즉 인구에서 찾아야 한다. 인구변동으로 지방도시의 주택 수요가 도시를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게 되면서 빈집이 번진다. 특히 젊은 인구가 사라진 여파가 크다. 임대시장을 뒷받침하는 젊은 인구는 빠져나가는데, 도시계획은 과거의 영광에 기대고 있을 경우 그 타격은 크다.

경상북도 김천시 구도심 모암동 일대에는 월세 광고 전단지가 골목 입구를 채우고 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10만~20만원이라도 받겠다는 광고가 경쟁적으로 내걸렸다. 4㎞ 바깥에 김천혁신도시가 위용을 자랑했지만, 구도심은 오히려 빈집으로 허덕이고 있다.

신도시라고 해서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김천시 전체 빈집 비율을 보여주는<그림 2-3>를 살펴보자. 구도심인 대신동(10.11%), 대곡동(11.31%), 지좌동(15.14%)의 빈집 비율도 높지만 혁신도시 지역인 율곡동(29.36%)의 빈집 비율 역시 전국 최고 수준이다. 사정이 비슷한 전남 나주시도 혁신도시 지구인 빛가람동의 빈집 비율이 23.62%로 집계됐다. 이런 신도시형 빈집 통계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다수 포함되어 있기에 별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도시 밖에서 인구가 충원될 만한 유인 동기, 즉 혁신도시에서 특별히 일자리가 폭증하지 않는 한 결국 미분양 아파트는 시내 다른 동네 인구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원도심의 인구는 빠져나간다.

산업 위기로 대규모 일자리가 사라지는 현장에서도 빈집은 빠른 속도로 번져간다.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경남 거제시 빈집 데이터(<그림 2-4> 참조)는 조선업의 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거제시의 빈집 비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지역은 장승포동(29.9%)과 옥포1동(27.3%), 장평동(19.47%)인데, 이들 모두 ‘조선소 동네’다. 장승포동과 옥포1동은 대우조선해양 조선소 인근, 장평동은 삼성중공업 조선소 인근 지역이다.

조선소 운영 중단, 자동차 공장(한국GM) 폐쇄 등을 겪은 전북 군산시 역시 시 전체 빈집 비율이 14.01%에 달한다. 군산시 소룡동과 미성동의 공가율은 각각 22.69%, 22.98%다. 두 동네는 공업단지 지역과 비교적 가까운 배후 주택 지역이다. 1990년대에 미성동에 지어진 한 아파트는 43㎡짜리 집 한 채가 2500만원 전후에 거래되고 있었다. 군산시는 구도심 공동화와 산업 쇠퇴로 인한 빈집 문제를 동시에 겪는 도시다. 군산시 구도심 지역인 중앙동(19.97%), 흥남동(22.99%)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빈집이라고 해서 다 같은 형태는 아니다. 빈집에도 유형이 있다. 한국형 빈집은 법률적 근간에 따라 여러 층위로 나뉜다. 먼저 지방 농촌형 빈집이 있다. 농가에 살던 고연령층 주민이 사망하거나 이주하면서 발생한다. 많은 농촌 지방 지자체가 비어 있는 집을 전원주택으로 개조하거나 귀농 인구에게 알선하는 형태의 사업을 벌인다. 농어촌정비법에 관련 조항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막상 이들 농촌형 빈집은 귀농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지 않다. 귀농 인구 대다수가 고쳐 쓰기보다는 새로 짓기를 원한다. 과거에 지은 집을 수선하는 것보다 최신 공법으로 짓는 게 더 경제성이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인구 10만~20만명 규모의 지방 중소도시형 빈집은 두 가지 축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라북도 익산시 중앙동이 지방 원도심 공동화의 대표적인 모습이라면,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의 풍경은 읍면동 중심의 한국 행정체계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1931년 처음 등장한 ‘읍’은 한국 지방행정체계에서 중요한 거점지역으로 꼽혔다. 195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읍내는 지방의 상업 중심지이자 교통 요충지였다. 그러나 오늘날 읍은 상업 중간거점으로서 역할이 퇴색했다. 소매유통업은 자연스럽게 몰락했다. 교통수단 발달로 인근 거점도시에서 의료서비스 등을 찾을 수 있다. 도농 혼합 지방도시의 부도심 역할을 맡던 읍 지역의 의미 자체가 쇠락한 셈이다.

만경강 하류 호남평야에 자리한 만경읍은 익산과 군산, 김제 한가운데 위치해 호남평야와 새만금 인근 요충지로 꼽혔다. 오늘날 이곳에서 빈집은 흔하디흔한 일상 풍경이 되었다. 만경읍 두내산로 남쪽 구간(만경리)에는 빈집과 빈 점포가 어지러이 방치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나이 드신 분들이 아프니까 더 이상 여기에 계시지 못한다. 돌아가신 분들도 있지만, 아직 기력이 남더라도 도시 요양원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집이 텅 비어 있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빈집의 가장 큰 문제는 ‘전염성’

지방도시에 비해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대도시 역시 빈집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특히 재개발 열풍이 불고 난 뒤, 재개발 사업이 취소된 경우 해당 지역이 빈집 밀집지역으로 남기도 한다. 인천 미추홀구(옛 남구) 주안동과 숭의동 일대가 대표적이다. 인천 구도심인 이 지역은 송도·청라·검단 등 외곽 신도심이 구축되면서 인기를 잃었다. 숭의동 일대는 2006년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지만, 2012년 해제되면서 자산가치만 믿고 집을 구입한 집주인들이 집을 버려두는 경우가 발생했다. 유사한 사례는 부산이나 서울에서도 생긴다. 서울시 노원구에서 전국 최초로 빈집관리 조례가 제정된 것도 이 지역 재개발이 무산되면서였다.

추후 수도권 아파트 단지에서도 얼마든지 빈집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하는 이들이 있다. 서울 접근성이 떨어지는 1·2기 신도시 노후 아파트에서 빈집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지방도시와 달리 수도권은 서울로 인구와 도시기능이 집중된다. 서울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통근거리가 멀고 노후한 집은 인기가 떨어진다. 국지적으로 수도권에서도 빈집, 빈 아파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LH토지주택연구원 이삼수 박사는 “이미 일본 도쿄 인근 위성도시에서는 발생하고 있는 문제다. 수년 후 한국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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